3월 25일, 행복나눔재단서 담당자 목소리로 프로젝트 이야기 듣는 ‘프로젝트 줌 인’ 첫 선
‘장난감 브릭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면’… 담당자가 전한 고민과 ‘슬라이닷’ 개발 과정
“저렴한 하드웨어와 재밌는 소프트웨어로 아동의 점자 학습 어려움 해결하고자”
“어떻게 소수를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나요?”
행복나눔재단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프로젝트 줌 인(Project Zoom-in)’ 행사를 마련했다. 지난 3월 25일 행복나눔재단 6층 i-room에서 점자 학습 장난감 슬라이닷 개발 프로젝트 ‘장난감 브릭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면’을 열고 곽예솔 매니저가 직접 해결하고자 한 문제와 솔루션 개발 과정을 공유했다.

‘프로젝트 줌 인’은 행복나눔재단의 실험적인 사회변화 프로젝트를 깊이 들여다보는 시리즈 세미나다. 사회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프로젝트 담당자가 직접 솔루션 개발부터 최적화까지의 과정과 고민을 전한다. 소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솔루션 개발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프로젝트 내용을 심층적으로 소개하고 행복나눔재단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한글 교구처럼 재밌게 반복 연습할 수 있는 장난감을 만들자!
이날 세미나에서는 행복나눔재단 R&D Lab 곽예솔 담당자가 시각장애 아동의 점자 모양 구별 연습을 돕는 장난감 ‘슬라이닷(Slidot)’을 개발기를 전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의 학습 환경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점자를 배우는 과정이 힘들고 어려워 매일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들을 위한 새로운 공부법을 고민하게 됐다. 특히 ‘점자 모양 구별’은 손끝으로 점자를 반복적으로 만지며 감각을 익혀야 하는 지루한 반복의 연속이지만, 이를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게 돕는 교구가 부족한 현실에 주목했다.
아이들 대부분은 손끝 감각이 발달되는 6-9세 시기에 점자 읽기를 학습하게 된다. 손가락의 촉감을 느끼고, 6개로 이뤄진 점자 모양을 익히고 외우는 데까지는 비교적 학습이 쉽다. 그 뒤로 손끝으로 점자의 모양이 어떻게 다른지를 구별하는 연습이 필요한데, 이 단계가 아이들이 점자를 배우며 마주하는 가장 큰 산이다. 1.5mm의 아주 작은 점자를 손끝으로 구별해야 하기에 무수한 반복 연습이 필요한데 자극이 없어 쉽게 지루해하고 어려워한다.
곽 매니저는 아이들의 점자 연습을 어떻게 재밌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종이로 된 점자를 많이 읽는 방법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글 교구처럼 아이들이 재밌게 반복 연습할 수 있는 장난감을 만들어 보고 싶단 새로운 도전에 다다랐다. 시청각 자극이 다양하고 버튼을 누르면 다양한 반응이 나와 게임처럼 공부할 수 있는 교구가 많은 한글처럼 ‘점자 학습 장난감’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매일 10분이라도 연습해야 하는 점자학습 특성상 가정에서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 부담이 적고, 아이들이 계속 연습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학습이 가능해야 했다. 행복나눔재단은 장난감 브릭과 중고 핸드폰을 이용한 하드웨어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 요소를 적용한 소프트웨어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새로운 관점으로 본질에 집중하기
“점자 읽기 연습 기기를 만들 때 시각장애인용 컴퓨터 ‘한소네’ 하단에 있는 자동 출력 셀을 당연히 탑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례가 많은데요. 점자가 자동으로 즉각적으로 올라와서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문제를 풀게 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셀 하나에 수리비가 10만 원 정도 들어서 아이들 장난감으로 사용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재단은 아이들이 문제를 반복할 때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자 인쇄 카드와 RFID* 스티커로 구현하기로 했습니다.”
*RFID: Radio-Frequency Identification, 주파수를 이용해 ID를 식별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인식하는 기술. 일명 전자태그다.
2023년 7월, 슬라이닷 프로토타입이 개발됐다. 네모난 아크릴 상자에 정답을 입력할 수 있는 키보드 6개가 달려 있었고, 내부에는 RFID 칩이 부착된 점자카드 인식 패드가 들어있었다. 점자 문제 카드를 태그하고 카드에 적힌 점자에 맞는 버튼을 누르는 장난감 형식의 교구를 즐겁게 사용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솔루션의 효과와 필수 기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점자 공부를 재밌게 할 수 있게 될 거란 희망에 부풀었지만, 갈 길은 구만리였다. 재단의 목표는 ‘15만 원 이내 저렴한 가격으로, 고장이 나더라도 부담없이 수리하거나 부담을 교체할 수 있는 장난감’이었는데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며 비용과 시간이 소요됐다. 이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곽 매니저는 다시 한 번 새로운 관점이 필요했다고 전했다.
슬라이닷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게임 작동을 위한 CPU(Central Processing Unit, 중앙 처리 장치)와 소리를 출력할 스피커, RFID 스티커를 읽는 리더기, 보호자에게 작동 내용을 보여주는 액정 디스플레이가 필요하다. 슬라이닷 전용 부품을 만들면 좋겠지만 최소 연간 1만 대 이상을 만들어야 제작 단가를 낮출 수 있다. 재단은 새 부품을 만드는 대신, 인식을 전환해 ‘중고 휴대전화’라는 대체제를 찾아냈다. 필요한 기능을 모두 갖춘 중고 휴대전화는 약 5만 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에도 고품질의 성능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훌륭한 부품이 돼 주었다.
휴대전화를 부착할 박스 틀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가격을 이유로 아크릴 소재를 사용했는데 수정이 어렵고 제작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곽 매니저는 장난감 브릭(Brick)으로 돌파구를 만들어냈다. 브릭은 처음 구입비를 제외하면 추가 비용이 들지 않고, 제작 의뢰 없이 누구나 조립할 수 있어 테스트 결과를 바로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브릭으로 교구를 만든 뒤로 아이들의 반응에 따라 태그 위치, 조작키 위치, 키캡 사이즈 등 모양을 수정하고 바로 다음 버전을 시험할 수 있었다.

재단은 브릭으로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다. 아이들의 사용성과 흥미를 높이기 위해 작동 키보드의 위치를 바꾸거나 포인트 키캡을 달아보는 방식이다. 아이들 손가락 크기나 힘에 맞춰 키캡의 사이즈를 다양하게 제시하고, 뚜껑이나 손잡이를 다는 등 외형을 개선하기도 했다.
아이들 특성에 맞춘 재미 발굴하기
하드웨어에 중고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문제 카드를 읽어주고 정답을 판독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여기에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고 계속 연습하고 싶게 만드는 여러 가지 요소를 추가했다.
대표적으로 슬라이닷은 즐거운 청각 자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래 아이의 목소리로 안내하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이해하기 쉽게 알려준다. 또 아이들이 버튼을 누르는 행위에 따라 숫자를 읽거나 정·오답 효과음을 내는 등 반응을 보여 재미를 느끼게 한다. 반복되는 리액션으로 흥미가 떨어지지 않게 매번 다른 효과음이 랜덤으로 나타나고, 자신의 목소리를 리액션을 녹음하거나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신기록을 경신할 때, 정답을 맞췄을 때, 오답을 눌렀을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리액션은 학습 효과를 높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점자 읽기의 핵심은 빠른 속도로 손끝이 점을 스치며 정확하게 읽어나가는 것이다. 문제를 더 빨리 풀게 되면 ‘신기록이다’라는 리액션이 나오는데, 이를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집중해서 빠르고 정확한 읽기를 연습하게 된다.
아이들이 여러 장을 풀게 하기 위해 ‘콤보’와 ‘콤보방어’가 만들어졌다. 신기록 경신에 비해 콤보쌓기는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재미요소다. 연속으로 문제를 맞힐 때마다 콤보가 쌓이는데, 4콤보를 달성하면 키보드에 진동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진동을 좋아해 콤보를 쌓는데 열성적인데 콤보가 무너지면 학습 의욕이 사라지는 부작용이 있어 3콤보부터 다시 쌓아가는 ‘콤보방어’가 가능하게 했다.
매일 오전 전달되는 데일리 미션에 따라주어지는 브릭, 장난감 등 리워드도 아이들의 학습 의욕을 높여주는 요소다. 매일 주어지는 미션을 수행하면 칭찬 스티커처럼 브릭을 모아 ‘슬꾸(슬라이닷 꾸미기)’를 할 수 있고, 개별 학습 현황에 맞는 목표를 달성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선물한다. 미션 중에는 새로운 공간에서 슬라이닷을 이용하는 것도 있는데, 아이들이 자신이 점자를 잘 읽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인정 받으며 자신감을 갖게 한다.

곽예솔 매니저는 “처음에 아이들이 하루동안 문제 카드 10장을 푸는 것으로 목표를 잡았다. 큰 목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과 만나며 점자에 거부감을 가지거나 키보드를 낯설어하고, 소리나 재미를 느끼는 요소에 대한 편차가 각자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며, “아이들 특성에 맞게 쓸 수 있도록 선택 사항 여러 개를 개발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곽 매니저는 아이들이 효능감과 재미를 느끼며 학습 의욕을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초침소리를 끄고 켤 수 있게 하거나, 키보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키보드 게임 모드를 개발하고, 모니터링을 통해 학습커리큘럼을 조정하는 등 아이들이 더 재밌고 꾸준하게 학습할 수 있도록 슬라이닷을 고도화해 나가고 있다.
그 결과 슬라이닷을 사용한 아이의 50% 이상이 점자 모양 구별하기 테스트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연습일 비율이 0%(슬라이닷 이전에는 점자 모양 구별하기만을 위한 학습 콘텐츠가 없었다)에서 50~60%로 증가했고, 점자에 대한 거부감이 줄며 스스로 슬라이닷을 사용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행복나눔재단은 시각장애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작더라도 당사자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확실한 솔루션을 만들고자 한다. 특히,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당사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거듭 테스트하며 당사자에게 필요한 방식의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노력한다. 이번 프로젝트 줌인을 통해 재단이 추구하는 사업의 방향성과 이를 달성해 나가는 문제 해결 방식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출처 소셜임팩트뉴스 https://www.socialimpact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582
소셜임팩트뉴스 최소원기자 2025.04.01 12:45